1. 여름철 철원 들판이 조용해졌다
강원도 철원은 국내에서도 드물게
넓은 평야 지대와 습지,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생태벨트가 어우러진
철새들의 주요 번식·도래지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도요새, 황로, 쇠백로, 알락해오라기 등
수많은 여름철새들이 철원 논습지를 무대로
번식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2025년 7월 중순,
나는 철원 갈말읍 일대 평야를 방문했을 때
논두렁과 둠벙 주변, 하천과 연결된 습지 구역에서
철새가 거의 보이지 않는 풍경을 마주했다.
논은 평소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고요하고 새 울음 한 번 들리지 않는 이례적인 정적이
평소의 여름철 철원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
현장 농민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지금쯤 새들이 날아다니고
논 위를 거닐었어요.
올해는 봄 이후로 거의 보질 못했어요.
조용해서 오히려 허전합니다.”
이 글은 철원평야의 여름철 철새 도래 감소 현상,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논 습도 저하, 번식지 이탈, 인간 간섭 요인 증가를
현장 중심으로 분석한 생태 관찰형 기록이다.
2. 철새가 철원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
철새는 단순히 먹이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 논 습도 상태
- 은신 및 번식 가능한 풀숲 구조
- 인간 활동의 밀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도래지를 선택한다.
2025년 철원 지역 논 습지 및 기상 자료를 보면:
- 논 수위 회복률 평균 74% → 61%로 하락
- 하천 연결 둠벙의 수심 평균 18cm → 9.7cm로 감소
- 6~7월 간 민간 드론 비행 건수 증가
- 농업 기계화 작업 집중시간 확대(06~10시)
즉, 철새들이 착지하거나 숨을 공간이 줄어들었고,
사람과 장비의 활동 시간·밀도가 모두 증가하면서
새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요인’도 커진 것이다.
B씨(한국습지생물연구소 연구원)는 설명한다.
“습지 구조가 얕아지면
철새가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가 돼요.
게다가 드론, 잡음, 갑작스러운 트랙터 진입이 반복되면
여름에도 철새가 철원을 피하게 됩니다.”
3. 철새가 없는 들판은 기능을 잃는다
철새는 단지 관광 자원이나 멋진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논습지 생태계에서
- 물속 곤충 개체 조절
- 수초 확산 억제
- 습지 정화와 물 흐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새가 사라지면:
- 논 수질 악화
- 병해충 밀도 증가
- 둠벙의 식생 균형 붕괴 등
순환형 논 생태계가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현장 마을 이장 C씨는 말했다.
“예전엔 새들이 날아오면
비 안 와도 논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근데 올해는 너무 조용해서
이게 맞나 싶어요.
농사는 짓는데, 자연이 비어 있어요.”
이건 단순히 철새 개체 수가 준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의 한 축이 빠져버린 시스템 전체의 붕괴 징조다.
4. 고요한 여름은 생명이 없는 계절일 수 있다
철원평야의 여름은
언제나 다양한 새의 소리로 채워졌던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부재’의 다른 말일 수 있다.
기후의 변화는
- 작은 논 습도의 차이
- 하루 평균 활동 시간 변화
- 무심한 기계 소음과 반복 작업을 통해
미세한 불균형을 쌓아 올리며 생명체를 밀어내고 있다.
나는 이번 여름 철원에서
철새가 없는 논 위를 바라보며
자연은 인간이 눈치채기 전에
먼저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앞으로도 이 고요한 변화를
기록하고 전할 것이다.
우리를 통해 철새의 부재가 보내는 신호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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