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갯벌에 구멍은 많은데, 게는 없다
충청남도 서천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물 다양성 갯벌 보전지역이다.
서천 송림리 일대의 연안 갯벌은
매년 수천 마리의 방게, 칠게, 민챙이게가 서식하며
수많은 철새와 저서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습지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25년 7월 초,
나는 간조 시간대에 맞춰
서천 송림리 해변 일대의 갯벌을 관찰하던 중,
눈에 띄게 줄어든 게 개체 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갯벌 위에는 수천 개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 어느 구멍에서도 게가 나와 움직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 마리의 유생과
죽은 게의 껍데기만이 간헐적으로 발견됐을 뿐이었다.
현장 생태조사팀 A씨는 말했다.
“갯벌 구멍은 여전히 있는데
게는 안 보여요.
게들이 나오질 않아요.
이 정도로 조용한 갯벌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 글은 서천 갯벌의 게 감소 현상과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고온 해수, 뻘 온도 상승, 유기물 구조 붕괴를
현장 중심으로 분석한 생태 관찰형 보고서다.
2. 게가 사라진 이유는 ‘갯벌의 온도’다
게는 기본적으로
20~28℃ 범위의 표층 갯벌 온도를 선호하며,
그 안에서 활동하거나 번식을 한다.
하지만 2025년 서천 갯벌은
- 기온 상승 + 햇빛 직사 + 해수유입 온도 상승이
겹치면서 표면 갯벌층 온도 31℃ 이상을 기록한 날이
7일 연속 이어졌다.
실제 환경부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측정 결과:
- 2020년 평균 표층 뻘 온도: 26.2℃
- 2025년 6~7월 평균: 30.4℃ / 최고 34.1℃
- 게의 활성 반응 거의 0에 가까운 조건
B씨(서천갯벌 생물다양성센터 연구원)는 설명한다.
“게들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스스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하지만 서천 갯벌의 경우
상층과 중간층 모두 온도가 너무 올라
게들이 버틸 공간이 줄어든 거죠.
결국 폐사하거나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게가 사라지면 갯벌 생태계는 뿌리째 흔들린다
게는 갯벌에서 단순히 기어 다니는 생물이 아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핵심 기능을 한다:
- 퇴적물 뒤집기 → 갯벌 통기성 유지
- 유기물 섭취 → 정화 작용
- 게 굴 → 미세 서식지 제공
- 먹이 사슬의 기초 제공(조류, 어류)
게가 사라지면 곧:
- 갯벌 표면이 딱딱하게 굳고, 공기 흐름 차단
- 혐기성 세균 증가 → 악취 발생
- 저서생물 감소 → 조류, 물고기 먹이 부족
- 먹이망 붕괴로 생물 다양성 급격히 저하
C씨(갯벌 주민모니터링단)는 말했다.
“우린 갯벌에 게가 얼마나 있는지를
갯벌 건강의 지표로 봐요.
지금은 게도 없고, 물고기도 안 들어오고,
모래도 딱딱하게 굳어요.
갯벌이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
4. 고요한 갯벌은 죽은 생태계의 징후다
갯벌은 원래 생명이 넘치는 공간이다.
수많은 발자국, 흔적, 움직임, 울음소리로
매일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살아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천 갯벌은
너무 조용하다.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이상하다.
고온 해수와 급변한 날씨,
인근 도시 지역의 유기물 유입 감소,
직사광선 노출 시간 증가 등은
모두 갯벌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작고, 민감한 동물인 게들이다.
나는 이번 여름,
게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서천 갯벌 위를 걸으며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쉽게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앞으로도 이 침묵을 기록할 것이다.
우리를 통해 사라지는 갯벌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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