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흐르지 않는 습지, 조용한 정적만 남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위치한 운곡습지는
국내에서 드물게 자연생태 보전이 잘 된 내륙형 습지로
논습지와 하천, 산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복합 생태계를 유지해왔다.
여름이면 맑은 물이 천천히 흐르며,
벼농사와 습지 생물들이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2025년 7월 중순,
나는 운곡습지를 찾았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물이 흐르지 않는 풍경이었다.
습지 중앙부는 물이 거의 말라 있었고,
갈대 사이로 보이던 작은 물길은 흙으로 메워진 듯 건조해져 있었다.
물속에서 자라던 수초는 누렇게 변했고,
물길 위를 날던 잠자리 떼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 습지안내원 A씨는 말했다.
“여름이 가장 풍성해야 하는데
올해는 6월부터 물이 줄기 시작하더니
7월엔 거의 끊겼어요.
이 정도로 마른 건
1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입니다.”
이 글은 운곡습지의 물 흐름 중단 현상을 중심으로,
그 배경이 되는 유입수 부족, 증발량 급증, 지하수위 저하를
생태학과 수문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콘텐츠다.
2. 물이 흐르지 않는 구조적 이유: 유입이 없고, 증발만 있다
운곡습지는 하천과 논에서 물이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지하수와 표층수가 만나는 구조로
하절기에도 수분을 유지하는 고유의 메커니즘을 가졌다.
그러나 2025년 여름, 그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환경부 수자원관리센터 자료에 따르면:
- 상류 유입수량(일 평균) 31.4톤 → 12.7톤으로 감소 (5년 평균 대비)
- 7월 일일 증발량 평균: 6.1mm → 평년 대비 1.8배 상승
- 지하수위 –27cm 하락 / 논 물막이 구조물 개방 지연
즉, 들어오는 물은 줄었고,
빠져나가는 물은 더 많아졌으며,
그 결과 습지는 말라버린 것이다.
B씨(전북기후생태연구소 수문지질팀)는 말했다.
“논에서 흘러들던 물이 줄어든 것도 크고,
지하수 재충전이 더뎌진 것도 있어요.
게다가 증발량이 너무 많아서
습지가 보관하던 물이 버티질 못하는 거죠.”
3. 흐르지 않는 습지는 생태계가 멈췄다는 뜻이다
습지는 단순히 물이 고인 땅이 아니다.
그건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 양서류 번식지
- 조류의 먹이터
- 수생 곤충의 생존 공간
- 식물군락의 수분원으로 기능하는
동적 생태계다.
그 흐름이 멈추면:
- 개구리·도롱뇽 산란 실패 → 유생 집단 폐사
- 물속 곤충 감소 → 먹이사슬 붕괴
- 습지 식물(애기부들, 줄, 부들 등) 고사
- 들새 이탈 → 조류 관찰지 위축
현장 습지모니터링단 C씨는 말했다.
“지난해엔 청둥오리, 백로가 매일 왔어요.
근데 올해는 6월 말부터 안 보여요.
습지가 마르니까
조류, 곤충, 식물까지
다 떠나는 걸 매일 눈으로 봤어요.
그냥 마른 땅이 돼버렸어요.”
4. 흐르지 않는 여름, 그것은 멈춰버린 자연의 경고다
여름은 습지가 가장 활발히 움직여야 하는 계절이다.
물이 넘치고, 생물이 번성하는 시기.
그런데 운곡습지의 여름은
정지 상태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기후는 더 뜨거워지고,
비는 짧고 강해지며,
수분은 스며들기보다 흘러가버린다.
순환을 위한 시간적 여유가 사라졌고,
자연은 결국 멈췄다.
나는 이번 여름,
운곡습지의 정적 속에서
물이 없다는 건 생명이 없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앞으로도 이 멈춘 시간들을 기록할 것이다.
우리를 통해 조용히 말라가는 습지의 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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