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개지는 사과, 달라진 타이밍
경북 청송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과 산지다.
특히 청송사과는 아침 저온과 낮의 일조량이 만들어내는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유명하며,
매년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은 청송사과를 찾기 위해 전국에서 소비자가 몰린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사과 재배 농민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변화가 있다.
“올해는 사과가 너무 빨리 익었어요.
9월인데 이미 10월 중순 사과처럼 보여요.”
나는 2025년 9월 초, 청송 현동면과 파천면 일대를 돌며
사과밭 세 곳을 직접 방문했고,
이전보다 빨리 착색되고, 수확 시기를 앞당기는 분위기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청송 사과의 조기 익음 현상,
그리고 그 원인이 단순한 기후 탓이 아니라
기온, 일조량, 생장 스트레스, 수확·유통 구조 전반에 미치는 복합 요인임을 밝히고자 한다.
2. 평균기온 1도 상승, 사과가 일찍 익는다
사과는 일교차가 클수록 당도가 높아지고,
낮 기온이 높을수록 색이 더 빨리 들며 성숙 속도도 빨라진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9월 사이 청송의 평균기온은
30년 평균보다 1.3도 높았고, 평균 일조시간도 12% 증가했다.
A씨(50대 사과 농민)는 “예전에는 10월 5일 이후가 가장 당도가 좋았는데,
요즘은 9월 말이면 껍질이 완전히 붉어지고 당도도 거의 끝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외형상 익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 수확 시기보다 너무 앞당겨 따게 되면
속이 아직 덜 익어 맛이 덜하고, 저장성도 낮아진다는 점이다.
또한 조기 익음은 유통 스케줄에도 영향을 준다.
농가 B씨는 이렇게 말했다.
“도매상들이 익었다고 빨리 따달라고 재촉하는데,
막상 조기 수확한 건 금방 무르고 쉽게 상해요.
유통 중 폐기율도 높아졌어요.”
즉, 기온 상승은 단순히 ‘일찍 익는다’는 문제가 아니라
맛, 유통, 수익률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변수가 되고 있다.
3. 착색은 빨라졌지만, 품질은 오히려 불안정
색이 빨리 드는 것은 보기에는 좋지만,
속이 익지 않은 상태에서 외형만 무르익은 사과는 품질이 낮다.
즉, 색과 당도, 식감이 일치하지 않는 ‘비동시 성숙’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C씨(청송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착색 속도와 당도 변화가 일치하지 않으면
소비자 불만도 커지고, 저장 후 상품성도 낮아집니다.
요즘 들어 알이 빨리 커지고, 과육은 물러지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2024년 이후 반복되는 **‘비정상 숙성 패턴’**은
기후 변화로 인한 열 스트레스, 수분 불균형, 생육 기간 단축 등
복합적인 환경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히 밤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사과 껍질에 당분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저장력이 떨어진다.
또한 일부 품종은 너무 빨리 익어
벌레 피해나 표면 갈변이 더 쉽게 나타나는 문제도 보고되고 있다.
4. 수확 시기 앞당겨지면 농사 전체가 흔들린다
수확 시점이 1~2주만 앞당겨져도
농기계 일정, 도매 유통 계약, 인력 스케줄까지 전부 흔들린다.
청송처럼 사과 수확이 집중되는 지역에서는
이런 변화가 반복될수록 농민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D씨(40대 사과 농민)는 이렇게 말했다.
“사과가 빨리 익는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정확한 타이밍을 놓치면 맛도 떨어지고,
시장 가격도 수확량이 몰려서 더 낮아지거든요.”
문제는 앞으로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해 매년 반복되고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농민들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날씨에 맞춰
품종을 바꾸고, 수확 일정을 조절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수익률 감소, 노동 강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청송사과는 여전히 품질 좋은 명품 과일이지만,
그 뒷면엔 계절이 흔들릴 때마다 흔들리는 농부들의 고민이 숨겨져 있다.
나는 이번 청송 현장에서,
기후 변화가 작물의 생장 주기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 구조까지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변화는 전국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으며,
우리를 통해 이런 기록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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