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학

예천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onlinerich-1 2025. 7. 6. 15:21

예천 양봉장 벌 실종

1. 벌이 떠난 벌통, 예천의 이상한 봄

예천은 예부터 양봉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맑은 공기와 풍부한 야생화, 그리고 전통적인 양봉 기술이 만나
아카시아꿀과 밤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2025년 4월, 나는 예천 유천면과 용문면을 돌며
세 곳의 양봉 농가를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은 “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벌통을 열었을 때 들리는 윙윙 소리는 너무 약했고,
일부 벌통은 아예 텅 빈 채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작년과 같은 시기와 비교해 꿀 채밀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양봉 농민 A씨는 “벌이 아예 종적을 감췄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올해는 아무리 기다려도 활동 개시가 너무 늦고,
벌들이 꽃이 피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고 했다.

단순히 ‘벌이 줄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어딘가에서 결정적인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날 이후, 벌의 실종을 둘러싼 원인을
기후와 생태, 그리고 농업의 구조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2. 기후 변화가 만든 ‘벌과 꽃의 엇갈림’

꿀벌은 온도와 꽃 개화 시기에 매우 민감하다.
예천의 2025년 3~4월 평균기온은
기상청 공식 발표 기준으로 평년보다 2.1도 높았다.
이로 인해 아카시아와 밤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졌고,
심지어 일부 꽃은 4월 초에 만개해
벌이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꽃이 먼저 시들기 시작했다.

양봉 농민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년엔 5월 10일쯤 채밀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5월 5일에 갔더니 벌이 거의 안 나와 있었어요.

꽃은 졌고, 꿀도 거의 없었죠.”

이른 개화와 늦은 벌 활동은 꿀 채취 실패로 이어진다.
또한 갑작스러운 고온은 벌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벌의 번식과 꿀 생산 능력 모두를 약화시킨다.
이는 단지 꿀 수확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 내 주요 매개자인 꿀벌의 ‘기능 마비’**를 의미한다.

벌은 꽃이 필요하고, 꽃은 벌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이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자연의 순환 고리가 하나씩 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3. 응애, 농약, 사라지는 방향 감각

기후 변화가 꿀벌을 힘들게 하는 동안,
다른 생물들은 오히려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꿀벌에게 치명적인 기생충인 **응애(Varroa mite)**는
고온 건조한 날씨에 더 빠르게 번식한다.
예천군 축산과에 따르면 2025년 봄,
예천 지역 40개 벌통 중 약 33%에서 응애가 확인되었다.

또한 살충제와 농약도 중요한 원인이다.
특히 논밭 근처에 설치된 벌통일수록
꿀벌의 방향 감각 상실과 실종률이 높았다.
양봉인 C씨는 “꽃은 많은데, 벌이 돌아오질 않아요.
나가서 날아간 벌은 다 실종
”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꿀벌은 일정 거리 이상을 날아간 뒤,
주변의 냄새, 방향, 광선을 이용해 집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공기 중의 화학적 물질이 많아지고
주변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
꿀벌은 방향을 잃고 야외에서 폐사하거나 영구 이탈한다.

벌의 실종은 이제 '벌통 안'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충돌, 기후 변화의 파생 피해가
가장 작은 생명체에게 먼저 다가오고 있다는 현실
이다.


4. 꿀벌의 붕괴는 생태계의 붕괴다

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꿀을 못 딴다는 차원이 아니다.
꿀벌은 과일, 채소, 곡물 작물의 70% 이상을 수분시키는 핵심 생물이며,
그 존재 자체가 식량과 생태계, 인간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예천처럼 양봉과 농업이 공존하는 지역에선
벌이 사라지면 사과, 배, 참외 등 주요 작물의 수분율 저하와
수확량 감소로 이어지며, 곧바로 지역 경제에 타격
이 발생한다.
실제로 2024년 예천군 농업기술센터 조사 결과,
과수 작물 3종의 착과율이 평균 22% 감소했다.

양봉 농가의 고사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벌이 없는데 뭘로 농사를 짓겠어요”라는 말은,
이제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생계도, 생태도 동시에 위협받는 이 상황은
단순한 ‘곤충 문제’로 넘겨선 안 되는
기후 시스템 전체의 경고음이다.

나는 이번 기록을 통해
벌이라는 작은 생명이 사라질 때
얼마나 많은 연결 고리가 무너지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앞으로도 꿀벌이 사라지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기록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를 통해 이 현실이 더 많은 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생태계를 지키는 첫 번째 대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