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학

계룡산 숲속 이끼, 여름에도 마르는 이유

onlinerich-1 2025. 7. 17. 23:11

계룡산 숲속에서 여름철 말라버린 이끼와 바위의 풍경

1. 여름인데도, 숲 바닥은 메말라 있었다

계룡산은 충남을 대표하는 산악 생태지대이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로도 상록활엽수림과 습윤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던 곳이다.
특히 여름철 계룡산 등산로 근처에는
나무 밑동, 바위 틈, 숲 바닥에 두텁게 쌓인 이끼층

차가운 공기와 촉촉한 기운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2025년 7월 초,
나는 갑사 방면 계곡 주변을 걷던 중
이끼층이 전보다 훨씬 얇아지고,
일부는 바짝 마르거나 색이 누렇게 변한 상태
임을 발견했다.
심지어 계곡 옆 응달 바위에서도
이끼가 검게 타들어간 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지 탐방객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원래 이끼가 초록 융단처럼 덮여 있었는데
올해는 많이 비어 보여요.
그리고 손으로 만지면 축축하지가 않고,
퍽퍽하게 가루가 일어요.

이 글은 계룡산 국립공원에서 실제 관찰된
여름철 이끼 건조 현상
,
그리고 그 현상이 말해주는 숲속 수분 불균형과 미세 생태계의 붕괴에 대한 기록이다.


2. 이끼는 왜 여름에도 말라가고 있을까?

이끼는 잎과 뿌리가 분화되지 않은 하등식물로,
자체적으로 수분을 흡수하거나 유지하는 능력이 약하다.
따라서 공기 중 습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늘 일정 이상의 기온·습도·음영 조건이 유지되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2025년 계룡산 일대 기상 자료에 따르면:

  • 6월 평균 습도 71.5% → 평년 대비 11% 감소
  • 야간 최저기온 22.1도 → 1.7도 상승
  • 평균 무강수일수 9.6일 → 13.4일로 증가

즉, 이끼가 회복할 수 있는 이슬 형성 조건이 줄어들고,
밤새 수분을 흡수할 기회도 사라진 것이다.
또한, 고온 건조한 공기 속에서는
태양광을 직접 받지 않더라도
바위나 지면 온도 상승으로 이끼층이 빠르게 마르고 있다.

B씨(계룡산국립공원 생태팀 연구원)는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는 응달에도 이끼가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이에요.
공기 중 수분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이끼는 즉시 탈수되며,
그 상태가 며칠만 이어져도 회복 없이 죽습니다.


3. 이끼가 없으면, 미세 생태계도 사라진다

이끼는 단지 풍경이나 숲의 배경이 아니다.
그건 미세 곤충, 균류, 선태류, 지렁이류의 서식지이며,

  • 숲속 수분 유지
  • 이산화탄소 흡수
  • 미세 먼지 포집
  • 토양 유실 방지
    등을 담당하는 기초 생태계의 핵심 구조다.

하지만 이끼층이 줄어들면

  • 이끼 사이에 사는 생물의 번식 실패
  • 버섯류와 공생하는 미생물 감소
  • 비 올 때 흙이 더 많이 씻겨 내려가는 침식 현상 증가
    등이 빠르게 나타난다.

C씨(계룡산 자원봉사 탐방해설가)는 말했다.

예전엔 나무뿌리까지 이끼가 덮여 있었는데,
이젠 나무 밑둥이 말라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거칠어요.
그리고 해마다 이끼색이 더 탁해져요.

즉, 이끼가 사라지는 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생물 다양성과
숲의 생명력을 가장 먼저 갉아먹는 변화
였다.


4. 이끼는 숲의 피부였다

이끼는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숲의 건강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언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초록빛이 줄어든다는 건
숲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계룡산은
여름철만큼은 시원하고 축축한 이미지로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여름에도
바위가 뜨겁고, 나무 아래가 바삭해졌고,
공기 속 수분이 부족한 여름
이 되고 있다.

나는 이번 여름,
계룡산에서 ‘이끼가 말라 있다’는 사실을 통해
숲의 밑바닥 생태계가 이미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를 기록할 것이다.
우리를 통해 숲이 보내는 침묵의 경고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