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학

제천의 고랭지 배추밭, 왜 잎이 탄 듯 변하고 있을까?

onlinerich-1 2025. 7. 12. 22:44

고온 스트레스로 잎 가장자리가 갈변한 제천 고랭지 배추밭의 풍경

1. 고랭지는 시원해야 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충북 제천의 백운면과 송학면 일대는
해발 500m 이상의 고랭지 지대를 중심으로
여름배추 주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의 배추는 원래 서늘한 기온과 일교차 덕분에
잎이 단단하고 수분 함량이 높아 김장용으로 특히 인기가 많다.

하지만 2025년 6월 말, 나는 제천 백운면의 한 배추밭을 찾았을 때
배추잎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말라가며
마치 화상을 입은 듯한 현상
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배추 농가)는 말했다.

물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잎 끝이 그냥 타들어가요.
한낮에 줄기마저 늘어지면 회복이 안 돼요.

겉으로 보기엔 무더위에 의한 단순 피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고랭지의 기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깊은 신호다.
이 글은 제천 고랭지 배추밭에서 나타난 ‘잎 타는 현상’,
그리고 그 원인이 고온 스트레스, 일조 불균형, 증산 작용 이상에 있음을 분석한 현장형 콘텐츠다.


2. 배추가 견딜 수 없는 온도, 고랭지의 여름이 달라졌다

배추는 대표적인 서늘한 기후 작물로,
생육 적정 온도는 15~22도,
30도를 넘으면 잎이 비대하지 않고 탈색 및 가장자리 손상이 시작된다.

2025년 6월 제천 백운면의 낮 최고기온은
무려 33.6도까지 상승,
2020년대 초반 평균보다 2.8도 높았고,
열흘 이상 폭염주의보가 이어졌다.

문제는 단순히 낮이 덥다는 게 아니다.
야간 기온도 22도 이상을 유지해
작물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
또한 일조량은 많았지만
고온·건조한 바람이 동반되면서 수분 손실이 빨라졌고,
잎이 마르거나 갈변하는 피해가 속출했다.

B씨(제천시 농업기술센터 작물환경 담당)는 말한다.

이 정도면 온도가 아니라 ‘열 스트레스’ 수준이에요.
배추가 증산작용으로 버티다가 포기한 거죠.
잎이 타는 게 아니라 증발하다 죽는 겁니다.


3. 배추잎이 타들어간다는 건, 수확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잎 가장자리가 타들어가는 현상은
단지 보기 흉한 게 아니다.
잎 조직이 죽기 때문에 광합성도 제대로 못 하고,
결구가 느려지거나 아예 결구가 안 되는 경우도 발생
한다.

이는 결국 상품성 하락,
도매가 하락 + 수확량 감소로 직결된다.
배추는 겉잎을 다듬고 속잎 중심으로 출하되기 때문에
잎이 많이 타버리면 출하 가능한 단수가 30~40% 줄어들기도 한다.

C씨(배추 계약재배 농가)는 말했다.

지금은 계약 단가가 맞아도
출하할 수 있는 배추가 절반도 안 돼요.
벌써 로스율 계산하고 있어요.

또한 무더위가 지속되면 병충해도 동반된다.

  • 무름병
  • 배추좀나방
  • 점무늬병
    등이 고온 속에서 더 빠르게 번지고,
    결국 농약 비용 증가, 작업 강도 상승까지 이어진다.
    수확 전 손실이 농가에 가장 큰 타격이 되고 있었다.

4. 타들어간 잎은, 고랭지라는 이름이 위태롭다는 신호다

제천의 고랭지 배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농업 브랜드이자
지역 정체성의 일부였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이제 그 기반부터 흔들고 있다.

‘고랭지’라는 단어는
‘차고 맑은 공기, 풍부한 물, 느린 작물 생장’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뜨겁고, 건조하고, 빠르게 탈진하는 작물의 땅이 되고 있다.

나는 이번 제천 현장 방문을 통해
단순한 고온 피해가 아니라
생산 시스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실감을 얻었다.
고랭지가 더 이상 서늘하지 않다면,
거기서 자라는 작물도, 사람도 예전처럼 버틸 수 없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를 기록할 것이다.
우리를 통해 작물의 잎이 보내는 신호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게 우리가 먹거리를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