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숙했던 계절이 낯설어질 때
나는 매년 봄마다 제주를 찾는다.
제주는 나에게 있어 ‘사계절이 분명한 섬’이자, 봄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하지만 2025년 봄, 제주의 공기는 달랐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지만, 햇살은 5월이 아닌 7월처럼 따갑고,
봄꽃이 피기 전에 이미 초여름처럼 뜨거운 대기가 느껴졌다.
이상 기후라고 하기엔, 변화가 너무 일관되고 현실적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단순한 관광보다 제주의 기후 변화가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라산 자락 아래 조천읍에 있는 소규모 농가 세 곳을 방문해 농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글은 제주에서 실제 체감한 봄 기온의 변화,
그리고 농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기후 변화의 현실을 기록한 현장형 체험 보고서다.
2. 봄이 아니라 ‘초여름’이 되어버린 제주의 4월
제주의 4월은 보통 평균 기온 13~15도 수준으로, 야외활동하기 좋은 선선한 계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25년 4월, 내가 제주시 조천읍에 도착했을 때,
오전 11시부터 기온은 24도까지 치솟았고, 햇살은 중부 지역 6월 수준으로 강하게 내리쬐었다.
모자를 쓰고도 햇빛에 얼굴이 타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오후 2시경에는 체감 기온이 27도에 이르러 반팔 옷을 입지 않으면 걷기도 어려웠다.
더 놀라운 건, 이른 더위로 인해 작물의 생장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감귤 농가의 50대 농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이맘때 모종을 옮겨심거나 가지치기 준비했는데,
요즘은 이미 꽃이 피기 시작하고 뿌리가 빨리 내리려 하더라고요.
작물 스케줄이 다 빨라져서 농사 시기 자체를 1~2주 앞당겨야 해요.”
또한 제주도는 바람이 강한 지역이라 기온 상승이 곧 수분 증발로 이어지고,
물 부족 문제까지 더해지고 있었다.
A씨는 “봄에 덥고 바람 불면 땅이 금방 말라요. 물 주는 주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필요해졌어요.”라고 했다.
이처럼 ‘봄답지 않은 봄’이 만들어낸 현장 속 변화는 분명 기후 시스템의 변화와 맞닿아 있었다.
3. 기후 변화로 흔들리는 제주 농업의 균형
두 번째로 만난 40대 여성 농민 B씨는 유기농 채소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엔 해충 출현 시기도 당겨졌어요. 봄인데 벌써 나방이 돌아다녀요.”라고 말했다.
기온 상승은 작물뿐 아니라 해충, 곰팡이, 균 등 전체 생태 주기를 바꾸고 있었고,
농약 사용 시점도 빨라지고, 유기농 방식 유지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봄이 너무 빨리 더워지면, 여름 작물과 겹치는 시점이 애매해져요.
농부 입장에선 일정이 꼬이는 거죠.
감자, 당근, 브로콜리 이런 작물은 봄 기온이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올해는 너무 급하게 더워져서 병해가 더 빨리 번져요.”
세 번째로 방문한 농가에서는 토마토를 하우스 재배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더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하우스 안 온도는 낮에도 35도 이상으로 올라가서,
토마토가 과숙(너무 빨리 익는 현상) 되거나 꼭지 부위부터 무르게 물러지는 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결국 봄이 더워지면서, 작물은 스케줄에 맞춰 자라지 못하고,
농가는 수확 시기부터 판매 루트까지 전부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기후 변화는 단지 환경 변화가 아니라, 농가의 경제 구조, 시간 관리, 생존 전략까지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4. 제주의 봄,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계절
올해 제주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계절 감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봄이 봄 같지 않은 이 낯선 감각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계절을 잃어버렸는가,
그리고 그 계절을 지켜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기후 변화는 이제 ‘지구 환경’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넘어서,
한 사람의 농사, 한 줄기 작물, 한 그루 나무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의 봄은 이미 달라졌고, 이 변화는 앞으로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기온 차이, 생장 주기의 변화, 해충의 등장 시기까지도
사실은 기후 위기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
나는 이번 제주에서의 기록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계절의 흔들림’을 기록하고 싶다.
우리를 통해 이 변화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기후 대응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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